본능적 감성의 자유스러운 유희 - M,chunder
- woolgachoi
- 2017년 1월 11일
- 3분 분량
예술가들이 집단으로 있는 spring ST에 있는 그의 좁은 화실은 언제나 너절하다.
언제나 반쯤 쓰다버린 물감들, 손수 짠 켐퍼스,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종이 커피잔 새갈응 만들었을 때 사용됐던 여러 모양의 그릇들 나는 그사이를 비집고 찌든 파키스탄제 FUDON(펼치면 침대가되는)에 앉는다.
그가 지난 몇 년간 지금의 화실에서 얼마나 새로운 그림에 열정을 쏟았는지는 2004년 KIAF전에 출품할 작품들을 보면서 느낄수 있었다.
소호 거리에서 주워왔다는 작은 box들 위에 그려진 그림들 .그리고 두꺼운 흰 물감속으로 물감을 밀어넣은듯한 작업들,
이전의 그림들은 주로 색면을 사용한 모노크륨위에 쵸크나 유화성 물질로 그리거나 짓이기기 그리고 흘러내리는 물감들을 이용한 미국적 야성을 강렬하게 표현 할려는 의도가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상반된 길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작품속에 한동안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지난 5년동안 지나간 자신의 세계에서 도피 할려는 의지로서의 수많은 시도는 미국 미술의 주역이된 포스트 모드니즘의 일환속에 동참했다는 과정이라 아니 할수 없다.
프랑스 분위기 즉 전통과 새로움들이 정해진 길만을 원하던 그곳에서의 해방감을 그는 맘껏 향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0번가에 있는 화랑가(첼시)의 한 커미션으로부터 네것을 가지고 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어쨌던 지금의 그림들은 많은 시행 착오를 그 원래의 그가 가지고 있었고 추구 할려고 했던 그 시점에 다시 서 있는듯하다.
왜냐하면 지난 80년대,90년대의형상이나 이미지가 지금의 구상 또는 추상의 선들속에 다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듯 절묘한 드라이빙으로 지난 그림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의 형상들을 자유서러운 낙서형의 선 작업에 적절히 접목 시키고자함이 역력히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문화를 공유하기를 바라는가?
지금 지구의 대부분의 모든 국가들은 20세기라눈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있다.
지금의 모든 사건들이나 일들이 단 몇초만에 모든 나라에 전 할수 있는 초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터널속의 암울함을 기억하며 다시 되돌아 갈려 하지 않는다.
그런 지금에 우리의 그림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를 간과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타피에스 이후에 유행처럼 일어난 추상적 이미지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것을 마치 격조인양
따랐고 수많은 추상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작가들이 탄생했다.
어쩌면 유럽 미술은 막다른 골몰길에 화려하게 꾸며진 침실로 수많은 작가들이 그곳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모든 시장은 미국으로 옮겨갔고 그것을 만회 해 볼려고 안간 힘을 써 봤지만 유럽의 특히 프랑스는 사회주의의 깊은 병폐와 더불어 깊은 수렁속에 잠겨있는 것이다.
유행, 그것은 참 아름답게 동참하는 그 시대의 화합인 것이다.
그것에 합류함으로서 지금의 이시대에 뒤떨어지지않는 사회적 문화를 공유 할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자신을 높은 정신적 가치관을 같은 느낌을 원하는 다수에게 전달 할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림들도 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문화의 한 유해성 장르라 아니 할수 없다.
그런나 이시대의 최울가의 그림은 그림은 어떠한가?
어찌 보면 그옛날에도 지금도 언제나 있었던 그림이다.
도무지 새롭다는것과 유행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어찌보면 정신을 잃고 혼자 걸어가면서 중얼거리는 그런 느낌의 ,,
도저히 새련미가없는 종류위 그림인 것이다.
그림의 기법 마져도 도저히 현대적 기법이 도입되지 않은 그냥 아무렇게 그려진듯한 낙서같은,, 그리고 크레용이나 유화성 스틱으로 마음되로 흘러가는 선 , 그리고 나무젓가락 같은 막대로 느낌대로 흘러 간듯한 치졸한 선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하나도 새로울것이 없는 어디서인가 본듯한 그림이라고 느낌을 받지 않을수가 없는 그런 종류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왜 그림에 주목하는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시대나 있었던 그림.그기에는 유행과는 도무지 상관없는, 한번 쯤은 누구나가 느꼈을법한 향기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떤 한분야 즉 정신의 원초에서 흘러나오는 셀수도 없는 수만가지의 이미지속에 빠져 맘껏 소재의 부족함을 잊고 일하고 있는지 모른다.
위험한 놀이성 회화.
하지만 그 세계의 그이미지는 영원히 고갈되지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역시 화가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의 정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끝없이 살펴야하는 두려움도 뒤따르는 위험한 작업이라 아니 할수 없다.
그때의 컨디션 과 기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작업들이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가 자기를 감시하지않으면 더큰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정된 재료에 너무 깊게 빠져있다보면 본인의 만데리즘에 빠져 어려운 경험을 하는 작가들을 여럿 보았다.
인간의 모든 물질에는 시간이 존재키 마련이다.
폭 넓은 재료적 감각을 포괄적으로 사용했으면하는 주문도 하고 싶다.
세계의 회화는 더 높은 벽이 존재하고 있다.
최울가라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자유스러움이 변질없이 오랫동안 분출 할려면 더 없는 자유스러운 정신 세계로 자신 스스로가 끌고 가지 않으면 않된다.
하지만 삽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저절로 땅이 파지는 것이 아니듯이 주어진 좋은 조건으로 그길을 가야하는 것은 오직 작가 자시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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